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빈민촌. 시외 지역. 못사는 동네. 시위대가 경찰서를 급습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청년(압델)이 입원했다. 구타 고문을 당한 것이다. 다음 날 세 친구가 모인다. 빈츠, 사이드, 위베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를 쏘다니며 논다. 빈츠는 압델이 경찰에게 폭행당한 사실에 분노한 상황. 경찰에 복수하겠다고 설레발을 친다. 어젯밤 시위 때 경찰이 잃어버린 총을 그가 습득했다. 위베르는 총을 보고 빈츠를 말린다. 빈츠는 압델이 죽으면 곧바로 경찰에 복수하겠다고 말한다. 세 친구는 막차를 놓쳐 밤거리를 방황한다.
영화 처음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지구가 보이고 그 위로 화염병이 떨어진다. 위베르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50층에서 추락하는 남자의 얘길 들어봤는가? 밑으로 떨어지는 동안 그는 계속 중얼거린다.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어떻게 착륙하느냐지." 이 말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한다(위베르는 빈츠에게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우리 신세 같지?'라고 말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빈츠, 사이드, 위베르다. 넓게 해석하면 그들처럼 방황하는 젊은이들이다. 이 영화는 청춘 영화다. 청춘 영화인데 밝지 않다. 한없이 어둡다. 여기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막장까지 간 애들이다. 학교는 불타서 사라졌고 만날 몰려다니며 마약이나 하고 말썽만 부린다. 위베르의 말에서 '추락하는 남자'는 그들을 뜻한다. 그들은 추락하고 있다. 경찰과 대치하며 악감정만 키우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사회로 나가 성공하겠는가? 착륙은 불 보듯 뻔하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자멸뿐이다. 지구 위로 떨어진 화영병은 불바다를 일으킨다. 추락하는 자에게 착륙이란 죽음이다. 이것은 그들의 종말을 의미한다. 영화 결말과 일치한다. '증오'는 누구를 향한 것인가? 누구를 증오한다는 말인가? 이는 '증오'를 증오한다는 뜻이다. 증오 자체에 대한 증오다. 왜냐면 증오가 파멸을 부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젊은이는 경찰과 대적한다. 그들은 경찰에게 증오심을 품고 반격한다. 하지만 경찰을 이기지 못한다. 화를 냈다가 화를 입는 쪽은 그들이다. 위베르의 말처럼(경찰 하나 죽인다고 경찰이 없어지냐?) 바위에 계란 치기다. 그러니까 영화는 증오를 증오하면서, 증오가 불러올 파멸을 통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이 좋게 지내라는 뜻이다. 왜 이런 주제를 담은 영화도 있지 않은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이것도 똑같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1. 세 이야기
영화에서 세 가지 얘기가 나온다. 유명인 몰래카메라 얘기, 화장실 노인이 들려준 얘기, 수녀를 배트맨으로 오해한 얘기. 줄거리와 상관없이 등장인물끼리 한 얘기지만 새겨들어야 한다. 여기에 복선과 주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말은 중요한 단서다. 말을 흘려들으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하나 곱씹어보자. 왜 저따위 얘기를 했을까.
우선 유명인 몰래카메라 얘기. 이것은 동네 꼬마가 한 얘기다. 꼬마는 빈츠에게 말한다. "몰래카메라 알아요? 이번엔 어느 유명 인사가 걸렸어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식당 밖에서 그를 기다렸어요. 그는 항상 같은 데서 밥을 먹거든요. 근데 그는 자길 찍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가 숨긴 카메라를 알려줬거든요. 거울 뒤 카메라를 그도 보고 있었죠. 옆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그는 자길 속이는 제스처라 생각하고 모른 척했죠. '이쯤 되면 끝나겠지.' 하는데 계속 찍는 거예요. 뭔가 일어날 것처럼. 형도 아는 사람일 텐데. 땀까지 흘리면서 초연한 척했죠. 웨이터가 지나갈 때마다 뭔가 안 일어나나 조마조마하는데 갑자기 한 녀석이 사인을 부탁했어요. 그는 '이거구나.' 하고 머리를 굴렸어요. 그리곤 선수 친다고 그놈한테 악을 썼죠. 영문도 모르는 놈은 당연히 열 받았죠. 결국 싸움이 붙었고 몰래카메라를 찍던 사람들이 말렸죠. 병원에 실려간 사람이 누구게요?" 여기까지다. 한마디로, 유명 인사가 애먼 사람과 싸웠다는 얘기다. 꼬마는 이 얘기를 왜 했을까? 감독이 심심해서 각본에 넣었을까? 그럴 리 없다. 이것도 다 치밀한 계획이자 의도다. 이는 경찰에게 복수하겠다고 설치는 빈츠를 비꼬는 얘기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우선 유명 인사는 누구겠는가? 바로 빈츠다. 왜냐고? 빈츠는 허세가 심하다. 그는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권총 지녔다고 깝죽대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근거는 또 있다.


빈츠와 위베르는 화장실에서 다툰다. 복수 여부를 놓고 의견 차이를 보인다. 빈츠는 복수에 찬성하고, 위베르는 복수에 반대한다. 빈츠의 철학은 이렇다. 한쪽 뺨을 맞았다고 다른 뺨을 내밀면 뒈진다. 위베르의 철학은 이렇다.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 둘이 티격태격하는데 한 노인이 변을 보고 나온다. 노인은 얘기를 들려준다. 노인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너희 신을 믿니? 그건 틀린 질문이야. 신이 우리를 믿냐고 물어야지. 그룬발스키라는 친구가 있었어. 우린 시베리아로 징용을 갔지. 지금도 시베리아에 가보면 알겠지만 기차에는 가축과 사람이 뒤섞여 타. 며칠이고 얼음산만 건너가는데 인적도 없는 곳이지. 너무 추워서 바짝 붙어 있어야 돼. 당연히 똥 누기도 어렵지. 기차 위에다 쌀 수는 없으니까. 일 볼 기회는 기차가 섰을 때뿐이었어. 기차가 연료를 보충할 때 말이야. 근데 그룬발스키란 놈은 수줍어서 같이 목욕만 해도 창피해했어. 난 그걸 가지고 놀려대곤 했지. 기차만 서면 모두 뛰어내렸어. 철로에 똥을 싸야 되니까. 내가 그놈을 또 놀리니까 그놈은 똥을 누려고 멀리 갔지. 기차가 움직이자 사람들은 재빨리 올라탔어. 왜냐? 기차는 기다리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놈이 말썽인 거야. 여전히 뒷풀숲에서 일을 보고 있었거든. 그때 난 허겁지겁 달려오는 놈을 봤어. 그는 손으로 바지를 잡고 있었어. 바지가 내려갈까봐. 놈은 기차를 잡으려고 했고. 난 손을 내밀었지. 그런데 닿으려고 할 때마다 바지가 내려가서 발목에 떨어지는 거야. 바지를 올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 하지만 손을 내밀 때마다 바지가 내려갔어. (사이드가 결말을 묻는다) 그룬발스키는 얼어 죽었어." 그룬발스키가 부끄러워하지만 않았다면 살았을 테다. 그는 수줍음 때문에 멀리서 똥을 누었다. 그러다 기차를 놓치고 얼어 죽었다. 한마디로, 체면 차리다가 뒈졌다. 체면이 문제였다. 이는 빈츠에게도 해당한다. 그가 복수하려는 이유는 체면 탓이다. 그는 압델(경찰에 폭행당한)을 알지도 못한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앞서 보았듯이 빈츠는 허세가 심하다. 이 허세는 체면으로까지 이어져 그룬발스키처럼 무모한 행동을 낳았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복수라니? 그것은 압델을 위한 복수가 아니라 자기 체면을 위한 복수다. 노인은 빈츠와 위베르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빈츠에게 경고한 것이다. 빈츠, 너 체면 차리다가 그룬발스키처럼 뒈진다. 따지고 보면, 세 이야기 모두 빈츠에게 경고한다. 다음, 수녀를 배트맨으로 오해한 얘기를 들어보자. 이는 사이드가 빈츠에게 들려준 얘기다. 웃기게도 모두 빈츠에게 얘기하고 있다. 어쨌든. "한 술 취한 새끼가 술집에서 나와서 까만 망토를 걸친 수녀에게 갔어. 그런데 갑자기 수녀 이빨을 갈기는 거야. 그리곤 열나 계속 팼어. 5분을 실컷 패다가 멈추고선 수녀를 쳐다보며 말하는 거야. '배트맨도 별거 아니군.' 재밌지? 수녀를 배트맨으로 착각했던 거야." 앞서 두 얘기를 파악했으니 이번 얘기는 이해됐을 테다. 결국 무슨 말인가. 취객이 수녀를 배트맨으로 오해하고 때렸다는 거다. 배트맨은 정의의 사도인데 여기서 경찰을 뜻한다. 취객은 누구인가? 보나마나 빈츠다. 경찰에게 복수하려는 빈츠를, 수녀를 배트맨으로 오인한 취객에 빗댄 것이다. 취객이 때린 사람은 배트맨이 아니었다. 그는 착각했다. 빈츠도 마찬가지다. 몰래카메라 얘기에서 애먼 사람과 싸웠듯이, 이 얘기에서도 애먼 수녀를 때린 것이다. 착각한 취객과 착각한 빈츠는 동일하다. 그는 문제의 원인이 경찰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진짜 원인은 증오심인데 말이다. 그래서 애먼 사람과 싸우고, 멀리서 똥 싸다 얼어 죽고, 수녀를 배트맨인 줄 알고 때린 것이다. 세 얘기 모두 빈츠에게 경고하고 있다. 감독이 관객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고.
2. 인물 관계를 나타내는 숏
세 친구를 살펴보자. 빈츠는 유태인이고, 사이드는 아랍인이고, 위베르는 흑인이다. 여러 인종이 고루 섞여 있다. 빈츠는 복수에 찬동하고, 사이드는 중립이고, 위베르는 복수에 반대한다. 세 인물이 역학 구도를 이루고 있다(찬성 - 중립 - 반대). 영화에 이를 상징하는 숏이 자주 등장한다. 장면을 보며 말하자.














3. 렌즈와 카메라 이동
광각렌즈가 쓰였다. 거의 모든 장면을 광각으로 찍은 듯하다. 왜 광각일까? 만약 의도였다면 '왜곡' 때문일 것이다. 광각은 표준보다 현상을 왜곡한다. 광각이 심해지면 어안魚眼이 된다. 광각은 원근감을 왜곡한다. 가까운 것은 더 가깝게 하고, 먼 것은 더 멀게 한다. 때문에 광각으로 얼굴을 찍으면 안 된다. 렌즈에 근접한 코와 입이 과장된다.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한다. 이 영화는 얼굴도 광각으로 찍었다.

영화의 심도는 얕다. 이상하다. 단렌즈는 보통 심도가 깊다. 딥포커스의 대명사가 단렌즈 아닌가. F스톱의 수치가 같다면 렌즈 초점거리가 짧아질수록 조리개 구경이 좁아지므로 단렌즈는 심도가 깊어야 한다. 영화는 단렌즈를 썼는데도 심도가 얕다. 이것 역시 감독이 의도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영화 분위기 때문이다. 광각으로 왜곡된 현상을 더 꾸미기 위해서. 심도가 얕은 화면은 꿈과 같은 배경을 연출한다. 더군다나 영화는 흑백이지 않은가. 내용은 사실적이면서 형식은 몽환적이다. 다른 이유는 조명 때문이다. 이동숏이 많으므로 조명 설치에 어려움을 느꼈을 테다. 배우와 카메라는 이동해도 조명은 이동할 수 없지 않은가. 감독은 조리개를 열어(심도가 얕아진다) 빛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DJ가 음악을 틀 때 카메라는 조감(bird eyes view)으로 현상을 포착한다. 카메라는 새처럼 건물을 비집고 하늘을 난다. 크레인을 사용한 것 같다. 어쩌면 헬기일지도.
특기할 만한 카메라 무빙은 이것이다.



ps. 감독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삼류는 테크닉에 치중한다.
ps. 렌즈는 표준이 제일이다.
ps. 사이드와 위베르가 경찰에 잡히고 빈츠 혼자 돌아다닌다. 그 시퀀스는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빈츠는 처음에 극장에 간다. 극장에서 폭력적인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다음에 간 곳은 복싱 경기장. 빈츠는 싸우는 선수를 지켜본다(카메라는 빈츠를 클로즈업한다). 마지막은 술집인데,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인다. 동행 중 한 흑인이 화나서 술집 문지기를 총으로 쏴 죽인다.
ps. 필립 나혼이 카메오로 등장한다(경찰 역).
at 2012/02/23 01: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