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그 영화였구나. 일전에 지인한테 들었다. 엄청 재밌는 영화가 있다고. 한 남자가 퇴근 후 밤에 노는데 일이 꼬여서 생고생 한다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마지막 장면이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이와 비슷한 프랑스 영화를 봤기에 그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지인은 아니라고 했다.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지인은 아무것도 몰랐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 영화가 재밌다는 것뿐. 언젠가 볼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어제가 그날이었다. 평범한 봉급생활자 폴. 그가 머피의 법칙에 휘말릴 때 나는 알아차렸다. '아! 걔가 말한 영화가 이거구나.' 지인 말대로 이 영화는 재밌다. 그가 알았던 것, 영화가 재밌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제목은 After Hours, 우리말로 특근이고,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있다. 그의 이름은 폴이다. 폴은 퇴근 후 집에 있다가 심심해서 카페에 간다. 책을 읽는데 한 여자가 말을 건다. 그녀는 마시. 마시는 친구가 베이글 모양의 문진을 파는데 살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고 번호를 알려준다. 폴은 집에 와서 그 번호로 전화한다. 마시와 연락이 닿고 마시는 이리로 오라고 폴을 유혹한다. 폴은 마시의 집에 찾아간다. 이때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없다. 나중에 폴은 죽을 위기에 내몰린다. 집에 가서 다음 날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폴. 병신같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밤을 헤맨다. 이 영화는 머피의 법칙이 관건이다. 숙명 앞에 개인이 무력하듯이, 폴은 꼬이는 사태를 바로잡지 못한다. 그는 닭장에 갇힌 닭이고, 새장에 갇힌 새다. 불합리와 부조리는 그의 몸부림을 무력화한다. 그는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에 쓸려가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관점을 유지한다. 그것이 영화의 주제다. 숏 구성 또한 그것을 따른다. 스콜세지가 대충 만드는 감독인가? 아니다. 그가 주제를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살펴보자. 숏 구성과 각종 디테일을 분석하면 영화가 더 재밌어진다.
1. 닫힌 형식(감옥 프레임)
영화에서 무의미한 숏은 없다. 감독은 숏을 구상할 때 생각을 거듭한다. 숏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숏은 영화의 기본 단위이며 기초 도구다. 이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영화의 질이 달라진다. 감독의 역량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숏으로 시작해서 숏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숏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숏은 주제를 담고 있고, 어떤 숏은 복선을 암시하며, 어떤 숏은 행동에 집중한다. 개중 눈여겨봐야 할 숏은 첫 번째, 주제를 담고 있는 숏이다. 이 영화에도 주제를 환기하는 숏이 많다. 여기서 주제는 무엇인가? 무력한 개인이다. 부조리에 쩔쩔매는 개인, 머피의 법칙에 갇힌 개인. 영화는 프레임을 사용해 이를 표현했다. 프레임은 인물을 가두고 답답함을 연출한다. 프레임에 갇힌 배우는 죄수를 연상시킨다. 군말 필요 없다. 장면을 보며 생각해보자.
폴은 마시에게 초대받고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여기는 공동주택 계단이다. 폴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광각렌즈를 쓴 듯한데, 원근감이 왜곡되었다. 광각은 멀리 있는 것은 멀리, 가까이 있는 것은 가까이 보이게 만든다. 멀리 있는 폴은 계단을 올라도 오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는 힘겨워 보인다. 오버랩 효과가 사용됨으로써 시간의 경과 또한 길게 느껴진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폴의 여정이 험난할 것을 뜻한다. 폴이 겪을 오늘 밤이 길고 고되다는 뜻이다. 중첩된 직사각형 프레임 또한 그를 가두고 있다.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그가 가는 곳마다 거울이 있다. 그는 거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관객은 안다. 그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두 번째 장면에 보이는 낙서가 흥미롭다. 좆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좆 된다는 뜻이다. 그는 저 낙서를 보고 줄리(술집 알바녀)를 멀리한다. 내 생각에 그가 머피의 법칙을 멈추고 싶었다면 줄리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줄리 집에서 하룻밤 잤다면 아무 일 없었을 테다. 열쇠도 자기한테 있으니 다음 날 집에 갔을 테고. 그러고 보면 낙서는 속임수다. 화근이다. 저 낙서 때문에 줄리를 멀리하고 다른 일에 휘말리지 않는가. 낙서 하나 그를 돕지 않는다. 뭐든 안 되는 날이다.
아까가 거울이었다면 이번에는 철조망이다. 철조망은 전형적으로 감옥을 상징한다. 이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위 장면들을 보라. 그는 오늘 밤 감옥에 갇혔다. 죄수 신세나 다름없다. 첫 번째는 지하철역이다. 요금 인상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무임승차하려다 경찰에 걸렸다. 영화는 철조망을 전경에 세워 그의 처지와 상황을 암시한다. 두 번째는 클럽이다. 모히칸에게 둘러싸여 머리 깎이고 있다. 그는 오늘 밤 포위되었다. 벗어날 수 없다. 세 번째는 자경단을 피해 숨은 곳이다. 재수 없게도 근처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심도가 얕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전경에 철조망이 있고 측면과 후면, 심지어 얼굴까지 철조망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마지막은 카페. 오해를 풀어줄 만한 사람을 만나 숨을 돌리고 있다. 방심은 금물. 창을 보라. 차광막이 철조망 같다. 실제로 저 남자(술집 사장)는 도와준다고 하면서 자경단 말에 넘어가 그를 잡으려고 한다.
택시를 잡는 와중에 게일(여자)을 만난다. 게일은 그를 집으로 들인다. 전화까지 친절하게 허락한다. 이제 고난은 끝인가? 우리는 이 숏을 통해 고난이 계속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는 또 프레임에 갇혔다. 이번에는 거울도 아니고 철조망도 아니다. 집 구조 자체가 프레임이다. 직사각형 틀이 보이는가? 그는 틀 안에 갇혀 있고 게일은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 숏은 잠깐이 아니다. 상황이나 행동은 변하지만 틀은 유지된다. 카메라는 틀 안에 인물을 가두고 계속 비춘다.
2. 사물을 이용한 심리 연출
미장센은 포괄적이다. 그것은 어떤 하나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화면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미장센의 요소가 된다. 때문에 감독은 소품을 중시한다. 미술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소품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위치도 중요하다. 카메라가 그것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대개 중요한 사물은 중앙에 놓인다. 측면-후방에 놓이는 사물은 비중이 떨어진다. 만약 전경에 놓인다면? 카메라가 사물을 걸치고 인물을 잡는다면? 이러면 곤란해진다. 앞에 놓인 사물이 인물을 가리기 때문이다. 장애물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통 영화에서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전경에 사물이 놓이면 관객이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을 걸치고 상황을 찍는 것은 실수로 오인될 수도 있다. 장르 영화는 이를 적극 사용한다. 어떤 영화는 시종일관 전경에 사물을 위치시켜 관객의 심리를 압박한다. <에이리언>이 그렇다. 히치콕의 영화에도 종종 나온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사물이 전경을 가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뭔가 막혀 있는 느낌. 답답함. 장애물 같은 소품이 주인공 심리를 대변한다. 이는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장면을 보면서 살펴보자.
기본적인 미디엄-투숏인데 구도가 복잡하다. 화면에 놓인 사물들을 보라. 앞에는 조각상(편의상 그렇게 부르자)과 도구가 있고, 뒤에는 기둥과 사다리가 있다. 비례가 맞는 것이 없다. 특히 기둥과 사다리는 불안정한 느낌을 배가한다. 사다리가 기둥처럼 올바로 서 있었다면 조금은 안정적이었을 테다.
원숏도 그냥 보여주는 법이 없다. 꼭 뭔가 걸쳐 있다. 저것은 조각상의 팔인데, 이를 관객에게 각인시켜서 결말과 연관되게 한다. 결말은? 폴은 저 조각상처럼 된다. 폴이 조각상이 된다(무슨 말이냐고? 영화를 보라). 전경에 배치된 팔이 답답함을 준다. 다른 장면도 살펴보자. 모두 전경에 무엇이 놓여 있다.
이는 주제와도, 내용과도, 상황과도, 심리와도 일치한다. 답답함은 영화를 통괄하는 분위기다. 껄끄러움. 일이 잘 안 풀릴 것 같은 느낌. 인물 관계도 사물을 통해 표현된다.
폴과 마시가 카페에서 대화하고 있다. 폴은 마시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여기서 마음이 변한다. 마시가 유부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자 관계도 복잡한 듯하다. 폴은 그녀의 얘기를 듣고 마음을 접는다. 둘은 이어지지 않는다. 이 숏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두 사람의 괴리감을 상징하는 소품이 존재한다. 차광막? 아니다. 어깨가 드러난 마시의 옷? 아니다. 두 사람을 가르는 검은 막대기. 보이는가? 메뉴판이다. 세워진 메뉴판을 측면에서 찍었기에 막대기처럼 보였다. 기본적인 미디엄-투숏인데 메뉴판이 중간에서 둘을 분할하고 있다. 해석이 억지스럽다고? 나도 처음에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메뉴판이 중간에 놓였다고 괴리감을 상징할 리가 없지 않은가. <택시 드라이버>를 떠올리고 이 해석을 확신했다. <택시 드라이버>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그때도 카페인데, 앉아 있는 두 사람을 저런 소품이 가로막아 분할한다. 실제로 그 영화에서 남녀는 잘되지 않는다. 로버트 드니로는 여자를 포르노 극장에 데려가고 퇴짜 맞는다. 그래도 못 믿겠다고?
반박의 여지가 없다. 손은 잡았지만 막대기가 둘을 분할하고 있다. 이 숏은 말한다. "너희 둘은 절대 이어질 수 없어. 안 어울려!"
하나 더 살펴보자. 술집 사장이 돌아오고 폴은 열쇠를 주고받으려고 줄리 집에서 뛰쳐나온다. 이제 열쇠만 교환하면 된다. 폴은 집에 갈 수 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이 숏을 보라. 뭔가 일이 꼬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두 사람을 분할하는 메뉴판도 막대기도 없는데 뭐가? 키스하는 두 게이. 우연하게도 술집 사장(왼쪽)은 마시의 애인이고, 폴은 마시와 잘 뻔했다. 한 여자를 공유한 두 남자. 그 사이에 게이라니. 만약 폴과 술집 사장이 게이였다면 이 숏은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저 키스하는 게이가 복선 역할을 할 테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게이가 아니다. 열쇠를 교환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게이들이 두 사람을 분할하고 있다. 폴과 술집 사장은 게이처럼 키스할 수 없다. 역시 열쇠도 교환할 수 없다.
인물 관계 얘기가 나와서 숏 하나 추가. 키키의 남자 친구인 홀스트가 폴에게 뭐라고 한다. 왜 마시에게 짜증을 냈느냐고. 위압적인 홀스트의 모습. 폴은 무서워서 깨갱한다. 굳이 폴의 얼굴을 볼 필요가 있나? 이 장면 하나로 폴의 심리가 밝혀졌는데. 왼쪽 아래에 놓인 조각상을 보자. 아까도 말했듯이 조각상은 폴을 상징한다. 조각상의 자세가 어떠한가? 센스 넘치는 투숏이다.
3. 대사와 주제와 내용의 연관성
지겨워도 조금만 참자. 스콜세지의 연출 기법을 파헤칠 작정이니까. 영화에는 장면 못지않게 대사도 중요하다. 대사만 잘 들어도 구조와 주제가 파악되는 경우가 있다. 거장은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대사 하나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모든 대사는 주제와 연관되어 수렴한다. 그러니 귀를 세우고 말을 경청하자.
폴이 마시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마시는 없다. 마시의 친구, 조각가인 키키가 혼자 작업을 하고 있다. 키키는 어깨가 아프다고 말한다. 폴은 키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과거 얘기를 꺼낸다. "난 어렸을 때 편도선 수술을 했어요. 수술 후 소아과 병실이 만원이어서 화상 환자 병실에 있었죠. 헌데 담당 간호사가 안대를 주는 거예요. 그걸 끼고 있으라면서요. 그리고 절대 풀지 말랬죠. 안대를 풀면 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고요. 편도선과 눈이 뭔 상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날 밤… 밤이었을 거예요. 난 결국 안대를 풀고 말았죠. 그랬더니…." 이 얘기는 영화 줄거리와 비슷하다. 안대를 푼 어린 폴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을 테다. 언제? 밤에. 폴은 '밤'이라는 말을 강조한다. 두 번이나 말한다. 왜? 영화의 배경 시간도 밤이기 때문이다. 폴이 영화에서 고생하는 시간은 밤이다. 출근하는 아침도 아니고, 근무하는 낮도 아니고, 퇴근하는 저녁도 아니다. 어린 시절 그때 밤이 끔찍했듯이 오늘 밤도 끔찍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화상에 대한 두려움도 반복된다. 화상은 폴의 트라우마다. 폴이 마시의 물건을 뒤졌을 때 화상 환자에 관한 책이 발견된다. 폴은 환자 사진에 역겨움을 느끼고 책을 덮는다. 그때 마시가 들어온다.

손에 들린 초를 보라. 크다. 커도 너무 크다. 사진으로 봐서 저 정도지 영화로 보면 더 크다. 촛불은 폴을 태워버릴 것 같다. 화상 입힐 것 같다. 스콜세지는 저 초를 따로 준비했을 것이다. 미술팀한테 부탁해서 최대한 활활 타오르는 초를 가져오라고 했을 테다.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폴이 게일을 만났을 때, 게일은 폴의 몸에 붙은 신문 조각을 읽는다. 신문에 무슨 기사가 났는지 들어보자. "어젯밤 맨하탄 소호 부근에서 한 남자가 분노한 무리에게 온몸이 찢겨 사망했다. 찢긴 옷에서는 신원을 파악할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의 얼굴은 심하게 손상되어…." 이것 또한 복선이다. 이는 이따 살펴보기로 하자. 게일은 신문 조각을 떼어주려고 한다. 폴은 아프다며 그녀를 말린다. 게일이 말한다. "태워야겠어요." 이 말을 '화상'을 연상시킨다. 게일은 성냥을 빌려 오겠다며 나간다. 마시가 들고 있던 촛불과 게일이 빌려 오겠다던 성냥이 상통한다. 신문 기사는 무슨 뜻인가? 기사에 따르면 남자는 맨하탄 소호에서 죽었다. 소호는 영화의 배경 도시다. 폴이 생고생 하는 곳이다. '분노한 무리'는 누구일까? 바로 자경단이다. 폴은 도둑으로 오해받아 자경단에게 쫓긴다. 찢긴 옷에서 신원을 파악할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왜일까? 폴이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키키의 작업을 도와줄 때 옷이 더러워지는데, 키키는 옷을 빨아줄 테니 갈아입으라고 한다. 폴은 흰 셔츠에서 검은 셔츠로 갈아입는다. 검은 셔츠는 키키의 것이므로 신원을 파악할 단서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이유는? 이는 나중에 폴의 말을 통해 드러난다. 폴은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나 그의 집에 머문다. 거기서 폴은 자기가 겪은 일을 설명한다. "내가 자신의 애인을 만나러 온 걸 알았다면 내 얼굴을 묵사발로 만들었을 테죠." 폴은 얼굴 때리는 시늉까지 보인다.
4. 조각상
폴은 키키의 조각상을 보고 말한다. 에드바르 뭉크의 작품이 떠오른다고. 그는 '절규'를 '절망'(번역상)이라고 잘못 말한다. 키키는 '절망'이 아니라 '절규'라고 말한다. '절망'이든 '절규'든 말은 중요하지 않다. 조각상이 뭉크의 그 작품을 환기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 뭉크의 <절규>일까? 키키의 조각상과 뭉크의 <절규>를 비교해보자.
비슷하다. 확실히 두 작품은 통하는 데가 있다. 스콜세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절규>를 택했을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두 작품이 주인공 폴을 대변한다는 것은 눈치챘을 것이다. '너는 오늘 밤 이렇게 절규할 거야.' 이런 뜻 아니겠는가. 문제는 스콜세지가 왜 <절규>를 택했느냐다. 뭉크의 저 작품이 왜 <절규>인가? 사람이 절규하는 표정을 지어서? 그는 왜 절규하는가? 배경에도 보이듯이 세상의 혼돈 때문이다. 붉은 하늘과 검은 강물을 보라. 선이 불안정하다. 절규하는 자의 몸도 그에 따라 출렁인다. 더 무서운 것은 뒤에 보이는 사람이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걷고 있다. 절규하는 자는 무서워하는데 그들은 태연해 보인다. 세상의 혼돈은 절규하는 자 혼자 감당할 몫이다. 영화 줄거리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림 속 세상은 영화 속 세상과 일치한다. 둘 다 혼돈이다. 부조리하다. 불합리하다. 인물 또한 마찬가지다. 그림 속 절규하는 자는 혼자다. 혼자 절규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폴은 혼자 미친다. 이상한 일을 혼자 겪는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특이하기는 해도) 자기만 도둑으로 오해받고 죽을 위기에 몰린다. 스콜세지는 뭉크의 <절규>를 영화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절규>가 고정된 이미지라면 <특근>은 움직이는 이미지다.
5. 앵글
위는 앙각이고 아래는 부감이다. 대비되는 앵글이 인물의 위치와 권력을 나타낸다. 폴은 키키와 홀스트를 만나러 클럽에 들어가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 건장한 사내가 문을 지키고 있다. 카메라는 계속 이런 식으로 둘을 잡는다. 문지기는 앙각으로, 폴은 부감으로. 앙각으로 올려다본 문지기는 권위적이다. 강해 보인다. 앙각은 인물에 힘과 권력을 부여한다. 관객은 올려다보는 입장이 되므로 위축되고 두려움을 느낀다. 부감으로 내려다본 폴은 약소적이다. 한없이 작아 보인다. 부감은 인물을 나약하게 만든다. 관객은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므로 인물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이 앵글들은 상황과도 일치한다. 폴은 문지기에게 겁을 먹고 못 들어가고 있다. 뻔한 앵글이지만 무의식적 효과는 크다.
6. 노란색
색도 연출 기법의 하나다. 여기서는 노란색에 주목해야 한다. 노락색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러 뜻이 있겠지만 옐로우카드에서 나타나듯이 그것은 경고를 의미한다. 조심하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노란색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자.
폴은 세 여자를 만난다. 세 여자를 만나 생고생 한다. 세 여자는 누구인가? 첫 번째 마시, 두 번째 줄리, 세 번째 게일이다. 셋 모두 폴을 좋아하지만 그를 배신한다. 마시는 자살해서 그를 난처하게 만들고, 줄리는 그의 얼굴을 그려 수배지를 만들고, 게일은 자경단 두목이 되어 그를 잡으러 다닌다. 세 여자 모두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노란색을 통해 그것을 알린다. 이 여자를 조심하라고. 둔한 폴이 그것을 알았을 리 없다. 우선 줄리(첫 번째 장면). 그녀의 옷 색깔을 보라. 노란색이다. 뒤에 커튼도 노란색이다. 다음 게일(두 번째 장면). 그녀의 옷도 노란색이다. 스콜세지는 두 여자에게 노란색 옷을 입혀 경고의 뜻을 나타냈다. 나머지 한 명, 마시는? 이대로라면 마시도 노란색 옷을 입었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마시만 노란색 옷을 안 입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노란색 옷은커녕 노란색 소품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시가 나오는 시퀀스에서, 그녀는 흰색 옷만 입고 빨간색 립스틱만 바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연출에 통일성이 없다. 나는 스콜세지가 고도의 수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노란색을 상징하는 디테일이 어디에 숨어 있을 것이 확실했다. 고심 끝에 한 장면이 걸려들었다.

폴이 마시의 물건을 뒤질 때 발견한 연고약이다. 해석하면, 2도 화상에 바르는 약이다. 이게 노란색이랑 무슨 상관인가? 연고약이 노란색인가? 아니다. 영어를 들여다보자. 'picrate'라는 단어가 보이는가? 피크레이트. 생소한 단어다. 피크레이트는 피크르산이 만드는 분자화합물이다. 피크르산은 무엇인가? 전문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페놀에 황산을 작용시켜 다시 진한 질산으로 나이트로화하여 만드는 노란색 결정이며 폭약으로 쓰인다.' 확대해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콜세지가 노린 것이 분명하다. 만약 세 여자에게 노란색 옷을 입혔다면 연출 의도가 눈에 띄었을 테다. 눈에 띄면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스콜세지는 마시에게만 일부러 노란색 옷을 안 입히고 피크레이트라는 화학물을 통해 노란색을 환기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이 숏이 클로즈업이라는 사실이다. 클로즈업은 해석 가능성을 축소한다. 감독의 의도는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난다. 카메라가 접근했다는 것은 주의를 요망한다는 뜻이다. picrate라는 단어에만 괄호가 쳐져 있는 점도 흥미롭다. 다른 하나는 마시의 대사다. 그녀는 말한다. "오늘 밤은 왠지 폭발할 것 같아요.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이는 폭약으로 쓰이는 피크레이트를 환기한다. 또한 마시의 성격과도 상통한다. 마시는 조울증이다. 기분이 수시로 변한다. 연고약은 노란색 - 화상 - 마시의 성격을 암시하는 소품이다.
7. 주제
구사일생으로 폴은 직장으로 돌아간다. 이 웃지 못할 하룻밤 해프닝을 통해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미 보았듯이 세상(밤에 겪은 세상)은 혼돈이다. 부조리하다. 직사각형 프레임처럼 감옥이다. 낮은 어떠한가? 폴이 직장에서 일하는 때인 낮은 어떠한가? 아래 장면을 보자.
폴이 출근하는 장면(아래)과 퇴근하는 장면(위)이다. 둘 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다. 어마어마한 철문은 감옥을 환기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것은 보통 문이 아니다. 문을 여닫는 직원 옷차림을 보라. 마치 교도관 같다. 직장도 감옥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첫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폴이 신입사원에게 일을 가르쳐주는데 신입은 말한다. 이런 일만 계속하기 싫다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그때 폴은 딴 데를 쳐다본다. 똑같은 모양을 한 서류, 기계처럼 타이핑 치는 직원, 책상 한쪽에 있는 애완견과 아이들 사진. 폴은 지루함과 고독감을 느낀다. 직장도 감옥이라면 집은 어떠한가? 폴은 혼자 산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만 외로움을 못 참고 카페에 간다. 거기서 마시를 만난다. 종합하면 집, 직장, 사회(밤)가 모두 감옥이다. 현대인은 감옥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죽음을 불러올 뿐이다(폴이 자경단에게 쫓겨 맞아죽을 뻔하지 않은가).
8. 감독 겸 카메오
히치콕 영화의 묘미는 무엇인가. 히치콕 찾기다. 히치콕은 자기 영화에 카메오로 즐겨 출연했다. 스콜세지도 마찬가지다. <택시 드라이버>에 그가 나온다. 잠깐.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알 테다. 이 영화에도 스콜세지가 나온다. 찾기 쉬우니까 밝혀 둔다.
장난꾸러기 스콜세지는 관객이 알아차릴까봐 카메라에 전등을 비춘다. 그는 도망치는 폴에게 전등을 비추는데 그 모습은 인간을 조종하는 신神 같다. 감독은 곧 영화의 신이다. 때문에 그가 위에서 전등을 비추고 있다.
ps. 겉은 코미디, 속은 공포.
ps. 줄리 집에서 쥐가 덫에 걸린다. 쥐는 폴을 상징한다. 줄리가 베이글빵 문진을 보여주자마자 쥐가 잡히기 때문이다. 베이글빵 문진은 키키가 만든 것이다. 폴은 줄리의 집에 머물며 전에 일어난 일(마시의 자살)을 잊고 싶었는데 줄리는 키키가 만든 문진을 보여줘 상황을 연결한다. 이는 폴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처했다는 뜻이다. 쥐가 덫에 걸린 이유도 그러하다.
ps. 폴과 마시가 카페에서 대화할 때 마시는 남편의 습관을 얘기한다. 남편은 오르가슴을 느낄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항복하라, 도로시." 이것도 그냥 넣은 대사는 아닌 듯한데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내 생각에 도로시는 폴을 뜻하고 항복하라는 말은 꼬이는 운명에 저항하지 말라는 뜻 같다.
ps. 블루스 추는 행위가 반복된다. 설명보다 장면이 낫겠다.
ps. 여배우의 발견. 로잔나 아퀘트(마시). 그녀는 예쁘고 야하고 발랄하다. 잊을지 모르니까 그녀의 얼굴을 올려 두겠다.